공대생의 문화탐방 공대생의 문화탐방

전염병을 대하는 인류의 자세, 눈먼 자들의 도시

글. 건설환경공학부 4 이광재 편집. 조선해양공학과 3 강가현
주제 사마라구 저, 해냄출판사, 2002
여러분은 팬데믹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팬데믹은 WHO(세계보건기구)가 선포하는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특정한 감염병이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대유행하여 인류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제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해진 COVID-19도 2020년 3월 11일 팬데믹으로 선언되었죠. 첫 출현 후 2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COVID-19는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팬데믹은 역사를 거치며 오래전부터 반복되어 왔는데요. 인류는 탄생한 이후 수많은 감염병들을 겪어 왔고, 수없이 극복해 나갔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눈먼 자들의 도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주제 사마라구의 대표작 중 하나로, ‘감기처럼 옮는 실명’이라는 소재를 다룬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평화로운 일상 속, ‘백색 질병’이라는 전염병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며 시작됩니다. 이유조차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점점 눈이 멀어가고, 한 명 두 명 눈이 멀어감에 따라 도시는 점차 혼란스러워지는데요. 한 여성을 제외하고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 세상에서,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인류가 벼랑 끝에 내몰렸을 때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공간, 바로 이 책의 제목이자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곳인 ‘눈먼 자들의 도시’입니다.
소설 속에서 인류는 수정체의 망막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밝은 빛이 눈앞을 가린 것처럼 온통 하얗게 보이는 ‘백색 질병’으로 인해 시각이 점차 마비되어갑니다. 처음엔 사람들은 ‘백색 질병’ 감염자들을 격리병동에 수용하였지만, 점차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며 병원을 관리하는 사람들마저 눈이 멀어버리게 되죠. 이는 곧 인류가 만들어낸 시스템까지 마비시켜버립니다. 맹인들은 정상적인 활동은커녕 생리활동마저 통제할 수 없는 혼란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격리병동은 온갖 악취로 가득 차 화장실과 침실마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리죠.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학대하고, 착취하며 삶을 이어나갑니다.
하지만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질병은 질서를 무너트리고 이기심이 그 자리를 꿰차게 만들었죠. 그동안 인류는 질서를 통해 살아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추구해 왔지만, 통제할 수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게 됩니다. 오히려 당장의 삶을 존속하기 위해, 지금껏 쌓아 올린 인류의 질서를 너무나도 쉽게 내어주게 되죠.
이처럼 혼란스러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이기심은 곧 생존으로 이어졌으며, 사람들은 점차 인간성을 잃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맹인들 사이에서 홀로 눈이 멀지 않은 한 여성에 의해 사람들은 다시 질서를 되찾고, 생존이 아닌 인류의 존속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요. 그 여성은 혼란스러운 팬데믹의 상황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들이 다시 정상적인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변화를 일으키죠. 이후 ‘백색 질병’은 아무 이유 없이 찾아왔던 것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져가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책 속에서 그려지는 ‘백색 질병’의 모습처럼 전염병은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곤 합니다. 그것들은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가기도 하고, COVID-19처럼 우리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류는 재난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와 지성을 통해 그것들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감염병의 정체를 확인하고, 백신이나 치료제를 개발하며 다시금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했죠.
앞서 말했듯 인류는 단순히 생존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기심이 질서를 파괴하는 모습을 방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COVID-19 속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 사회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단계로 넘어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책이 어떻게 되든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스스로가 개인 방역을 잘 지키며, 이기심이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이죠.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각자의 안전을 위해, 주변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질서를 지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들 건강하게 다시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